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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 체육센터 앞에서 채소를 판매하시는 어머님이 계신다. "사장님" 하고 말을 건넸더니, 그냥 평범한 어머님이라고 하셔서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오늘은 시금치를 사서 올리브유에 볶았더니 훌륭한 점심 식사가 되었다. 뼈에 붙은 두툼한 고기를 먹을 때 마냥 통통한 시금치를 입속에 한가득 넣으며 '시금치에 먹을 게 많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금치가 향채도 아닌데 향긋한 시금치 향이 혀에 깊게 베인다. '시금치도 이렇게 맛있구나.' 생각하며 점심 식사 내내 시금치 생각을 했다.  채소 판매하시는 어머님과의 대화가 깊은 깨달음을 주었던 적이 있다. 인기 있는 채소는 일찍 동이 나는지라 상추가 보이지 않길래 "혹 오전에 상추도 있었나요?" 하고 여쭈어보았다. 어머님 말씀이 상추를 심었는데 농사가 잘 안되셔서 이번에..
사랑하면 사랑하면 양지영 더 많이 사랑했더니그만큼 나는 작아져요오래 품어줬더니그만큼 늙어가고요계속 기다렸더니힘이 빠졌어요그래서 나는 없어졌습니다 내가 비워진 곳을 당신으로 채워요인내마저 당신의 헤아림이었어요작고 늙어 없어진 나를당신이 빚는 탄생의 순간천년이 하루가 된 날아주 잠깐 기다렸을 뿐이라고당신은 웃으며 고백해주었습니다
빛의 파도 빛의 파도 양지영빈 마음에빛 한 방울물결따라 일렁이는따스한 파도벅차오르는 파도 끝자락코 끝에 묻은 사랑 내음
소원 소원 양지영네가 반짝반짝 웃을 때즐거움의 씨앗이 두 눈 가득해그 씨앗을 심고 길러기쁨의 나무가 자라잘 익은 열매를 우리에게 건네줄 때네게서 맛보는 정직한 용기입안 가득 감사의 향기한 해 한 해11월이 기다려진다    *2025년 11월 7일을 기다리며. 외숙모가
운동화 두 켤레 아이들이 따뜻한 물을 찰랑찰랑 받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재미있게 목욕 놀이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잘 놀고 있나 욕실 문을 열었다가 세탁비누와 세척 솔이 놓인 것을 보고 누가 가져다 놓았냐고 물으니 하준이가 가져왔다고 답했다. 화장실 한 편에 세척하려고 둔 운동화 세 켤레를 발견하고 나를 도와주려고 미리 가져다 둔 것이었다. 순간 "엄마, 운동화 빨려면 뭐 필요해요?"라고 하준이가 물었던 게 기억났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엄마를 위해 가져다주리라 결심한 듯 비밀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던 조그마한 얼굴도 떠올랐다. 하준이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이 밀려와 행복으로 자리 잡는다.   한창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던 욕실이 어느새 조용해졌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내 귀에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들린다. 욕실 쪽에서 나는..
안부 안부양지영 으레 하는 말 속진심이 전해질 때타닥 타닥피어오르는 온기 타닥타닥타다닥지피는 모닥불 스산한 공기움츠러들었다가가슴 활짝 펴고 걸을 수 있음은꺼지지 않는온기 때문에 희미한 불꽃 냄새가실 즈음 안녕 잘 지내고 있는지불씨 한 줌네 맘에 전하는 인사
상처 상처양지영 마음 아파서 더 듣지 못한 이야기남겨진 무수한 말들 속너의 상처가 깊게 드러날 때나의 한숨조차 너에겐 사치였을 터내 진심조차 너에게 고통이었을 터곪고 터져 깊게 패인혈흔의 상처찢겨져 버린 단단한 너의 눈망울이녹아내린 날인고의 의지가 무너져 내린 시간괴리의 세월 속 혼자 묻어둔 너를 안고살아라 버텨라내가 살 테니내가 버텨낼 테니
미움 미움양지영 미움의 옷깃을 단단히 여며 잠그고새벽녘 산책길 나선다 핑글핑글 낙엽 손짓 보지 못하고새벽 내음 맡지 못하고새들의 환대 듣지 못하고 나 혼자 아스라이 걷는좁디좁은 오솔길 능선이 깊게 패여간다 나뭇잎 끝 물방울 떨어질 때마다나쁜 년 못된 년매서운 바람에 못 이겨 게워 내는 눈물 밟히는 낙엽 아래 떨어진 물방울꾹 꾹 밟아 떤다짓이겨진 낙엽 속검게 물드는 냉랭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