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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운동화 두 켤레

  아이들이 따뜻한 물을 찰랑찰랑 받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재미있게 목욕 놀이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잘 놀고 있나 욕실 문을 열었다가 세탁비누와 세척 솔이 놓인 것을 보고 누가 가져다 놓았냐고 물으니 하준이가 가져왔다고 답했다. 화장실 한 편에 세척하려고 둔 운동화 세 켤레를 발견하고 나를 도와주려고 미리 가져다 둔 것이었다. 순간 "엄마, 운동화 빨려면 뭐 필요해요?"라고 하준이가 물었던 게 기억났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엄마를 위해 가져다주리라 결심한 듯 비밀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던 조그마한 얼굴도 떠올랐다. 하준이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이 밀려와 행복으로 자리 잡는다.

  한창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던 욕실이 어느새 조용해졌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내 귀에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들린다. 욕실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뭐하니? 들어가도 될까?"라고 묻고 욕실 손잡이를 돌리는데 잠가 놓아서 돌아가지 않았다. "너희 혹시 운동화 빨고 있니?"라고 묻자 서걱서걱 소리가 멈추고 잠잠해진다. 문이 열리자, 아이들의 손에는 세척 솔이 하나씩 들려있다. 운동화 두 켤레를 빨아 놓은 것이다. 한 켤레 마저 솔질하려는데 엄마가 알아챘다고 하영이가 말한다. 대견하기도 하고 야무지게 솔질하는 모습이 상상되자 웃기기도 했다.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하니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이제 저녁 먹게 나오라고 말하며 욕실 문을 닫는데,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나를 사랑하는구나 싶어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평소에 자기 실내화를 빨면 용돈을 주는데, 자발적으로 엄마를 돕고 싶은 마음에 나 몰래 내 운동화, 남편 운동화를 쓱싹쓱싹 닦았다니 엄청난 사랑을 아이들에게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 동생에 대한 하영이의 배려에 감동했다. 동생에게는 한 짝만 빨게 하고 나머지 세 짝을 본인이 다 빨았다고 한다.

  항상 내가 어른이니까 아이들을 돕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나를 돕고 있었다. 내가 아이들을 가장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아이들이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주고 있었다.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묵상이 되었다. "하나님, 도와드리려면 뭐 필요해요?"라고 묻고 실제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쁘실까? 사실 운동화는 내가 다시 빨아야 했다. 뒷정리도 내 몫이었지만, 내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묻고 하는 행동도 사실 저지레에 가까울 수 있지만 하나님은 정말 기쁘실 것이다. 엄마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하영, 하준이가 느끼듯 나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묻는다. "하나님, 뭐 필요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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