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이는 호불호가 강하다. 어렸을 적 나를 생각해보면 나는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해야 되는 것이라면 했다. 하다보면 그 속에서도 재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색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다. 잘하지 못하는 것은 많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하기 싫은 적은 없었다. 잘하지 못할 뿐이지 안하는 것은 아니다. 하영이는 나와 완전 다르다. 본인이 싫어하는 것은 아예 안 한다. 했다가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강하게 뿌리친다. 그래서 억지로 시킬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 미리 의사를 물어보지 못해 강제로 교육을 듣게 된 하영이였다. 만들기 좋아하는 하영이에게 좋은 프로그램인 것 같아 청소년문화재단에서 하는 일일 공예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이미 정원이 마감되어 대기 순번을 받았는데, 취소 자리가 나서 하영이 차례까지 돌아왔다. 취소 자리가 났다고 전화오신 담당 선생님께 바로 확답을 드려야 해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토요일에 11:00-18:00까지 여러 공예 수업을 한 번에 받는다고 하영이에게 프로그램 설명을 하니, 꼭 가야하는 거냐고 답했다. 하영이에게 토요일은 큰 의미가 있다. 늦잠을 잘 수 있고, 게임을 할 수 있고,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날. 그런 토요일에, 본인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하루종일? 자신이 거기에 있어야 되는 거냐고 하영이가 항의한다. 교육 장소로 데려다 주는 차 안에서 아무 생각이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창 밖만 응시하는 하영이였다.
출발 전, 하영이에게 남편이 밝게 웃으며 쾌할하게 한 마디 던진다. "하영아, 그래도 엄마가 너 생각해서 신청했으니 이왕 가게 된 거 즐겁게 다녀 와!" 나도 그 말에 힘입어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하영이에게 말을 건넨다. "하영아, 어떤 분들은 하영이 학교 멀리 다니니까 등하교 차로 픽업하기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기도 해. 그런데 엄마는 그때마다 즐겁다고 이야기 해. 엄마는 운전도 좋아하고 하영이 데리러 갈 때마다 드라이브 하는 기분으로 다녀오거든. 엄마가 힘들지 않은 진짜 이유는 이 일이 엄마한테 당연하기 때문이야. 자녀가 원하는 것을 해 줄 수 있는 여건이라면 부모로서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이 일이 당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들고 에너지가 소비되는 힘든 일이 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지. 똑같은 일도 어떤 사람에겐 즐거운 일이거나 당연한 일이 될 수 있어. 하영이도 이번에는 한 번 다르게 생각해 봐. 신청해도 마감되었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가게 되었으니 재밌는 거는 재밌게 하자고 말이야. 어떤 부분은 생각 외로 즐거울 수도 있고. 몰랐던 것을 새롭게 배울 수도 있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하영이에게 전화가 왔다. 재잘재잘 여러 일들을 이야기한다. 무엇을 배웠는지, 퍼스널 컬러에서 자신은 어떤 성향으로 나왔는지, 무얼 만들었는지, 어떤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지도. 덧붙여, 왔으니까 하기는 하는데 안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고(역시 끝까지......).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수업이었던 것 같다. 더불어 하영이에게 다음에는 꼭 미리 물어보고 신청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