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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아이들의 독감에 이어 나도 독감에 걸렸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열이 나니 누워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빨리 회복해야 일정들을 소화할 수 있으니 증상이 나타나자 당장 병원으로 가서 비싼 페라미플루 수액까지 맞았다. 하루가 지나니 몸이 정상인 것처럼 회복되었다. 이렇게 이틀을 보내면 당연히 집도 어지러지고 해야할 일들도 미뤄지니 차근차근 해나가는 게 맞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좋았을텐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에 화가 났다. 회복되자마자 긴 시간 운전하며 일정들을 소화해내다 보니 저녁이 되어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화까지 났다. 그렇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입으로 욕을 내뱉는 것은 안 될 일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욕이 나왔다. 너무 놀랐지만 주워 담을 수 없는 게 말이다. 아이들이 들었으면 어떡하지 싶었다. 단 한번도 입 밖으로 욕을 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시간이 지나 하영이가 무언가 결정한 듯 담담하게 나에게 걸어오더니 입을 뗐다. "엄마, 부탁이 있는데요...... 욕은 하지 말아주세요." 하영이가 들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부끄럽고, 그 상황이 무어라고 화를 절제 못한 내 자신의 나약함에 더 속상했다.

  아이들을 모으고 너희에게 욕을 듣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처음 입 밖으로 욕을 꺼낸 거라고 설명했다. "아이 씨" 라고 말한 순간, 그 말 뒤에 자연스럽게 욕이 달라붙어 입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생각난 말씀이 있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입으로는 악한 말을 하면서 머릿 속으로 말씀을 생각하는 내 모습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는 것 같아 너무 죄송했지만, 그 순간에도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감사하다. 사실 나는 입 밖으로 욕을 꺼낸 것은 처음이었지만 마음 속으로 욕한 적은 여러 번 있다. 그리고 "아이 씨" 정도는 화가 나면 쓸 수 있는 말 아닌가 하고 그냥 넘어갔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이 맞기에 "아이 씨"도 욕의 한 모양이니 절대 쓰지 않기로 아이들 앞에서 약속했다. 이 일을 계기로 마음 속으로도 욕하지 않기로 결단했다. 더러운 단어들을 떠올리지 않는 것이다. 마음 속에서 그 악한 말들을 외치지 않는 것이다. 이 역겨운 내 모습이 진짜 나라서 더 할 말도 없다. 

  삼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욕에 대해서 내 마음과 입을 단속하기로 결단했다는 것이 부끄럽다. 그동안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내 자신을 너그럽게 대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상황에 화 안 날 사람 있어? 나만 그래?'라고 타협하면서. '입 밖으로 욕 안 한 게 어디야. 이것도 많이 참은 거야.'라고 합리화하면서. 지나고 보면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었는데 순간 화르륵 분노로 타오르는 내 자신을 다스리지 못했던 거다. 성령님께 내 입술을 다스려주시길 기도하며 선한 말들을 입술에 담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아이들 앞에서 내뱉었던 말들과 감정들을 회개한다. 이제는 말과 마음 속 생각까지도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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