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예수 생명 내 생명

양지양 2023. 7. 10. 17:21

  오늘 지티 본문 설교를 들으면서, 우리가 연약하거나 모르고 죄를 지을 때가 있을 수도 있으나 예수 생명의 씨앗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고의적이거나 지속적으로나 거리낌 없이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사자 새끼는 사냥에 실패할 수도 있고 적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자이기 때문에 커서 사자가 되는 것처럼 예수 생명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장성하지 못했을 때는 넘어지고 실패할 수 있지만 장성했을 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예수님처럼 죄를 이긴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갈 2:20)이 생각났다.

 

  이어지는 본문을 보며 내게 허락하신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늘 분몬 (요일 3:9-16)에서 9절은 죄에 대해 말씀한 다음 바로 10절부터는 계속해서 형제 사랑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다, 서로 사랑하라 이것은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다, 형제를 사랑함이 생명으로 옮겨진 증거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심으로 사랑을 우리가 알게 되었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결론 짓는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진 존재이다. 내가 속한 셀 교회와 우리 아이들이 속한 교회의 교육 부서, 가족들, 친구들, 아는 사람들 모두를 한 명씩 생각해 보게 된다.

 

  엄마는 다시 아이들의 여름 방학에 맞추어 대전으로 와서 엄마 회복을 위해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 사실 달갑게 답변할 수가 없었다. 매주마다 반찬을 만들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에게 보내고 있다. 열 번째의 택배를 보냈을 때, 서서히 지쳐가는 것을 느꼈다. 처음으로 불평이 나왔다. '계속 이렇게 해야하는 건가? 언제까지 해야되는 걸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지만 한숨이 나왔다. 아이들의 겨울 방학 때 아이들은 우울한 방학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 대에서 그 한 달은 아주 짧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인내에 대한 말씀을 내게 주셔서 우리가 원망하지 말고 감당하기로 했다. 감사함으로 한 달을 보냈다. 그리고 엄마가 다시 우리집에 오셔서 도움 받고 싶다 요청하셔서 엄마를 우리집으로 모시고 왔고 내가 엄마의 손발이 되어 조금이라도 불편하심이 없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감당했다. 아이들과 남편은 뒷전이었고 아이들과 남편을 챙기면서 엄마를 챙긴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엄마가 대전으로 돌아가시려는 시기 또한 엄마 컨디션에 온전히 맞추어서 최대한으로 늦추어 한 달을 계셨다. 남편은 장모님을 가장 많이 위하는 사람인데 그 시간이 본인에게도 어쩔 수 없이 힘들었는지 마지막에는 엄청난 짜증을 내게 퍼부었다. 표면적으로는 이 시간 때문이 아닌 것처럼 남편은 나의 아주 사소한 행동을 꼬투리 잡아 어마한 욕을 내게 퍼부었다. 나는 순간 내 행동이 남편의 감정을 상하게 했기보다는 이것은 핑계일 뿐이고 엄마때문에 지친 감정이 나를 향한 짜증과 불평으로 퍼부어지는 것을 느꼈다. 엄마가 집에 같이 계셔서 나는 사정하며 제발 조용하고 원만히 넘어가주기를 바랐지만 남편은 결국 화를 내며 집 밖으로 나갔다. 엄마도 불편해지고 아이들은 무서움에 떨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마무리는 좋게 지었지만 지금 계속 그때가 떠오르는 건 또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싶은 마음 때문이리라.

 

  오늘의 묵상과 그때의 감정들을 상기시키며 다시 한 번 새벽을 깨우리라 다짐한다. 말씀에는 능력이 있고 기도에도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나를 변화시키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하시며, 그로 인해 상황을 풀게 하시고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한다. 나는 지금 기도할 때이고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말씀하시고 일하실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