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엄마의 불안

양지양 2023. 5. 20. 00:54

   오늘 엄마 모시고 정신과를 다녀왔다. 세 번째다. 엄마는 불안이 시작되면 땀이 나고 혈압이 오르면서 심장이 빨리 뛰신다. 그리고 그렇게 불안이 계속되다 보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이 오기도 하는지...... 몇 개월 전 부정맥과 관련된 정확한 검사는 다 받아보셨다고 한다. 그때도 특이 소견은 없었는데 한 병원에서 부정맥 기가 보인다고 했었다고 한다. 어젯밤 자다가 깨셔서 부정맥 현상 때문에 잠을 설치셨다. 오늘 정신과에 가기 전 내과에서 심전도 검사를 했는데 현재로서는 이상 소견이 없고 정상이라고 하셨다. 엄마가 많이 불안해하셨는데 다행이었다. 4일간 드셨던 신경안정제는 엄마에게 맞지 않아 용량을 더 높여 처방받았다. 그리고 일주일을 더 지켜보며 엄마에게 맞는 약을 찾아 세팅하고 대전으로 가시기로 했다.

 

  원래는 엄마께서 내일 내려가시기로 하셨다. 엄마는 우리에게 미안해서 아마 대전으로 하루빨리 가시려고 했던 것 같다. 진료받기 전에 상황이 좋지 않으면 엄마를 대전으로 보내지 않기로 신랑이랑 이야기했었다. 진료받으면서, 지금 내려가시기에는 약도 준비가 되지 않았고 체력도 마음도 준비가 되지 않으신 거 같아 엄마를 설득했다. 지금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엄마'라고 말씀드렸다. 엄마가 힘들면 우리도 슬프고 엄마가 즐거우면 우리도 기쁘다고 말했다. 그건 나도, 신랑도, 아빠도, 혜영이도 동일하다고, 모두 엄마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말씀드렸다. 내가 고린도전서 12장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아셨을 것 같다. 며칠 전 엄마가 너무 힘들고 우울해 보이셔서 고린도전서 12장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써서 문자로 보내드렸다.

 

  내게도 엄마에게도 다시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엄마는 고맙기도 하고, 대전에 가야 하는데 다시 잘 잘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뒤섞여 복잡한 심경이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잠자기 전 기도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명상도 하기로 했다. 어제 체기가 있으셔서 토하시려고 몇 번이나 구역질하셨는데 다행히 체기는 많이 가셨고 음식도 예전만큼의 양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드실 수 있게 되었다. 컨디션이 나아지시는 것 같았는데 밤이 되어 가면서... 엄마에게 다시 불안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 열감이 느껴지면서 계속 덥다고 하셨는데 엄마의 몸을 만져보니 내 몸 온도보다 낮았다. 엄마는 혈압을 몇 번이나 재시고 불안해하셨다. 혈압계의 오작동인지 심장을 체크하라는 메시지가 떴다고 하셨고 수치가 오르락내리락한다고 하셨다. 어지러움도 느껴지신다고 하셨다. 선풍기를 켜고 창문을 열어 드리고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에게 웃으면서 "내 몸이 엄마 몸보다 더 뜨거운데?"라고 말하니 엄마가 내 몸을 만져보시고는 진짜여서 같이 웃었다. 응급실에 가야하나 생각했다고 말씀드릴 때는 진정이 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엄마에게 이제 주무실 거냐고 여쭤보니 그렇다고 하셔서 신경안정제를 드시라고 한 뒤, 엄마 손을 잡고 기도해 드렸다. 엄마는 내 말끝에 계속 "아멘, 아멘" 답하셨다. 엄마가 TV를 틀어놓으셨는데 '시사적격'이 나오고 있었다. 나도 평소 즐겨보는 프로그램이긴 했지만 잠자기 전 숙면을 유도하기에 적합한 프로그램은 아닌 것 같았다. 유튜브 틀고 명상을 해보자고 말씀드렸다. 흔쾌히 해보자고 하시면서 강물이 흐르는 영상을 고르셨다. 총 17분 동안 명상을 하고 호흡에 집중하며 긴장을 이완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게는 멍때리는 시간처럼 느껴졌는데 엄마에게는 필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집에 가셔서도 주무시기 전 거실에서 TV로 명상 영상 틀고 꼭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흐르는 강물이 참 보기 좋다, 숲의 전경이 마음에 든다, 자연이 참 좋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영상이 끝날 때 유튜버께서 합장하며 "나마스떼" 말씀하셨는데 그 말에 엄마는 두 손을 모으고 "아멘"으로 답하시는 게 너무 웃겼다. 엄마랑 그것 때문에 한참 웃었다. 엄마에게 일주일의 시간이 더 주어졌으니 잘 주무시고 회복하셔서 아라폭포전망대도 가고, 가까이에 있는 현대아울렛도 가보자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엄마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마음 깊이 엄마와 엄마의 형제들을 사랑하셨지만 하루 한 끼조차 제대로 못 먹는 가난한 환경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자녀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시지 못하셨다. 엄마는 고사리손으로 밭일을 해야 했고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동과 가족의 학대를 받으면서 자랐다. 종종 엄마께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면 너무 가슴이 먹먹하고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서 조심스레 그만 듣고 싶다고 말씀드리곤 했다. 어쩌면 사랑받고 싶은 게 당연한 어린 아이였던 엄마에게 그때 결핍된 부분이 지금 불안으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엄마에게 불안이 찾아왔을 때, 옆에서 챙겨드리고 계속 묻고 이야기를 나누니 좀 더 빠르게 진정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어렸을 때 우리를 챙겨주신 것처럼. 어렸을 때는 엄마, 아빠가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셨고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었다.

 

  혜영이가 오늘 여러 번 엄마가 걱정되어 전화가 왔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혜영이가 울컥하는 게 느껴졌다. 며칠 전 엄마가 대전으로 내려가셨을 때 걱정하시는 부분을 혜영이가 챙겨주겠다고 먼저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 나도 걱정만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혜영이가 엄마 혼자 계실 때 생각해서 반찬도 미리 차려서 놔주겠다 하고 저녁에 퇴근해서도 챙기겠다고 말해주어서 너무 명쾌하게 해결이 되었다. 정신과 진료받으면서 엄마가 걱정하시는 부분들이 있어 이야기를 나누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라 말씀드리지 않았었는데 혜영이가 일요일에 엄마 모시고 엄마 출석 교회를 당분간 같이 가거나 계속 혜영이 출석 교회로 가게 되면 일찍 돌아오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다. 순간 엄마께서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는지 흠칫 놀라시면서도 잔잔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료실에서 나와 어느 교회로 갈지 확정 짓지 못해서 결정되면 말씀드리려 했다고 말했다. 나도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전혀 헤아리지 못했던 부분이라 '혜영이가 속 깊게 이런 부분까지 생각했구나' 하며 많이 감동했다. 실제로 그런 부분에서 불안을 느끼시고 힘들어하시는 엄마에게는 더 깊이 와닿았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여러 번 되물었다.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어 하시는 것처럼. 엄마는 혜영이가 성령을 제대로 받은 것 같다고 참 고맙다고 하셨다. 

  "성령을 제대로 받았다"는 엄마 말씀이 진짜 맞는 말이다. 나도 내가 얼마나 찌질한지 잘 아는데, 내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누굴 도와주거나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면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고 있다. 내가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