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실망할 때, 사람에게 감동받을 때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을 마주한다. 예전에는 직접 만나는 사람만이 만남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카톡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 대상, 전화, 화상 채팅, SNS 그리고 단체카톡방까지 합한다면 하루에도 어마하게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 받고 온라인 상으로 만남을 가진다. 때로는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산적인 일이 일어날 때도 있고 나의 에너지를 많이 할애했지만 에너지를 소비하기만 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만남도 있다. 조금 더 명확하게 얘기하자면 아쉬움이 아닌 서운함이 남는 만남이다. 여러 채널을 통해 더 자주 나의 관심과 시간, 에너지를 상대에게 주었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반응이 오지 않거나, '나라면 그러지 않을텐데.'라는 생각이 상대에게 작용한다. 그럴 때면 흔히들 얘기하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상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판단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오른다.
어쩌면 상대는 나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간의 인간관계에서 정립된, 일반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관계라는 것에 상대가 맞지 않았거나 내가 들인 시간, 에너지가 아까워서 나 홀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상대는 나의 상처를 알든 모르든 나는 상처를 마음에 지니고 그대로 가라앉아 버린다. 사실 상대가 나의 상처에 대해 인식했다면 내게 그렇게 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상처받은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알맞은 대응을 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에 상대가 놓인 것일까.
이렇게 점진적으로 깊어지는 내 생각의 뿌리에서 나는 벗어나고 싶다. 너희는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하라,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이 모든 말씀의 기초 위에 나를 올려두고 싶다. '나'로 향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말씀'으로 향하고 싶다. 그래서 화가 났다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억울해 하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방향을 튼다. 나의 모든 생각을 아시고 상대의 모든 마음을 아실 하나님께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이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라도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다. 그 가운데 놓여진 여러 사건과 관계들까지도 그 결과는 여호와 이레로 예비하셨음을 믿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자리에 머무르며 '순종'하는 것. 내 안에 드는 악한 생각들과 싸워 그 생각을 내려놓고 비워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것. 평안, 화평, 사랑, 인내, 절제, 겸손. 하나님 주신 좋은 것으로 내 안에 채우는 것.
오늘도 나는 편협한 사고와 내 눈 앞의 판단들로 '이 정도 사실들이면, 잘못했네'라고 나의 화를 정당화하려고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데'라고 입 밖으로 내고 싶은 이 말을 꿀꺽 삼키고(앗 글로 내뱉었네)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진정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입으로만 얘기하는 립서비스 같은 빈 말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따스한 말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은혜 받을 자격 없는 내가 은혜 받았으니, 내가 어떤 찌질한 인간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이번만큼은 하나님 닮은 넓은 마음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잘 하고 있다. 다 알고 있다"고 하시는 말씀이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됨을 고백한다. 또한 화가 나려고 할 때, 좋은 사람을 통해서 감동받게 하시고 치유받게 하시니 그것도 감사하다. 나는 나 혼자 있는 것이 편한 사람인데, 작년 한 해를 돌아보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힘든 순간에 또 진정으로 그것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남을 판단하려 할 때에 그 마음에 동조하기보다 오히려 상대를 걱정하며 악한 길로 달려가는 내 마음을 막아서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 내 마음이 또 죄 지으러 달려갈까봐 오늘도 그것을 막아 주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을 좋은 사람들을 통해 느낀다. 나의 연약한 마음 앞에 먼저 믿음으로 그 마음을 정지시키고, 중재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마음은 내 악한 마음과 대조되면서 '아,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이게 허다한 허물을 덮는 사랑이구나.' 하고 감동으로 밀려온다. 오늘 하루 그들의 선한 마음이 나를 죄악으로부터 살렸다. 그래서 그 좋은 사람들에게 "천사세요?"라고 물어보았다. 하나님께서 내가 죄 지을까봐 천사를 보내주신 것 같다. "주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